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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이야기

혈액형별 성격에 대한 단상

사실 좀 오래 된 이야기이고 지금은 많이 시들해져서 이 글을 적을까 말까 많이 망설였다.  하지만 아직도 '난 A형이라 소심해서...' 라든가 '쟤는 AB형이라 그래'라는 식의 이야기를 듣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 때마다 주변의 사람들에게 "그건 믿을 게 못된다."라고 이야기해도 피를 이용해서 분석한 것이기 때문에 과학적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 사람들을 위해 이 글을 쓴다.

 

혈액형 별 성격의 오류는 몇 가지가 있다.

 

그 중 첫번째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는 특징을 쪼개놓았다는 것'이다.

 'A형은 소심하다', 'B형은 다혈질이다', 'AB형은 사이코다'

위의 문장은 보편적으로 익히 알려진 혈액형 별 성격이다.  그렇지만 위의 내면화된 성격은 모든 인류가 가지고 있다.  화내야 할 상황인데 참기도 하는 것이 인간이고, 가끔은 아무 것도 아닌 일에 화를 내기도 하며 전혀 예상하지 못한 행동을 하기도 한다.  빈도의 차이야 있겠지만 혈액형과 관련이 있는 게 아니라 '자신이 처한 상황'에 관계되어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친구와의 신뢰를 중히 여기는 사람이 친구에게서 큰 돈을 빌려달라는 부탁을 받았을 때 거절하지 못하고 고민하는 것은 단순히 'A형이라 소심해서'가 아니다.  또한 기분이 안 좋았던 친구를 건드렸는데 과민반응했다고 해서 'B형이라 다혈질인 것'이 아니고, 갑자기 우스꽝스러운 머리를 하고 나타났다 해서 AB형이 아니란 이야기다.  즉 상황에 따라 누구나 (보편적으로 알려진) A형처럼, B형처럼, 또는 AB형처럼 행동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구하러 간 사람 빼고 다 A형이라고 할 수 있는가?>

 

또한 혈액형 별 성격은 사람의 자라온 환경을 완벽하게 무시한다.  또 예를 들어 설명하겠다.  같은 O형인 두 남자가 있다.  한 명은 부유층 자제로 태어나 엘리트 코스를 밟아가며 세상에 부러울 것 없이 살아갔고, 다른 한 명은 어려서부터 가난하여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일찍부터 노동자로 전락해 하루를 벌어 하루를 먹고 사는 남자다.  이 두 명이 같은 O형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성격이 일치할 확률은 얼마나 되겠는가?  그래도 비슷한 구석이 있다고?  위에도 말했듯이 인간의 보편적인 성격 중 일치하는 부분이 있을 뿐이다.  그래도 안 믿는다면 당신은 특정 혈액형의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사이코'나 '소심한 인간'이라고 믿는 것인가?

 

마지막으로 과학적인 혈액형의 종류다.  사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는 O형이다.  그런데 아버지께서는 O형, 어머니께서는 AB형이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 일인지 의아해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필자는 편의상 O형으로 분류되지만 정확하게 측정하면 'ABO O형'인 것이다.  혈액형은 단순하게 4가지로 분류되지 않는다.  편의를 위해 큰 범주로 나눈 4가지로 나눌 뿐 실제 혈액형의 갯수는 어마어마한 것으로 알고 있다.(예전에 백여개 정도라고 들은 적이 있다.)  이렇게 단순히 큰 범주에 있는 4가지 혈액형으로 나눠졌을 뿐인데 그에 따라 성격도 단순하게 4개로 나눈다는 것 자체가 웃기는 일인 것이다.

 

내가 알기론 혈액형에 열광하는(지금은 많이 줄었지만) 나라는 우리나라와 일본 뿐이다.  B형이라 다혈질인 뉴요커 이야기를 들은 사람은 아무도 없지 않은가?

 

 

제발 '혈액형별 성격'이란 망상에 사로잡혀 자학하거나 자기 성격을 착각하는 일, 다른 사람 자체를 혈액형으로 단정 짓는 일이 없길 바란다.